출처 : 중앙일보 요즘 들어 가끔, 기도인지 침묵인지 구별이 안되는 명상을 한다. 내가 하는 명상은 좋은 생각도 아니고 무념무상도 아닌, 그냥 생각의 흐름을 막지 않고 두고 보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흐르지 못하고 맺히는 집착의 무늬들이 얼룩얼룩 어른거린다. 그 매듭들을 어떻게 풀까. 욕심이어서 버릴 것이 있고 용기를 가지고 해내야 하는 것이 있다. 이 때 성프란체스코의 기도가 마음으로 스민다.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는 평화로운 마음을 주소서. 바꿀 수 있는 것은 그것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또한 그들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마음이란 신기한 것이다. 편협할 때에는 스스로도 쉴 자리 없이 날카롭기만 하지만 넉넉할 때는 세계를 품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니 티벳의 스승인 소걀 린포체의 말이 이해가 된다. 마음을 미혹에 맡겨 보면 집착의 달인이 된다고. 땅에 누워 하늘을 보면서 맑고 넓은하늘 속으로 마음을 퍼져 나가게 하면 마음 밖에 있는 하늘이 마음 속 하늘을 일깨우게 된다고. 미국이 기회의 땅이라면 티베트는 은둔의 땅이다. 오래된 영화 \'티베트에서의 7년\' 에서 아직도 기억나는 장면은 티베트여자가 서양인에게 하는 말이다. \"당신들은 어떤 방법으로든 자신들의 야망을 실현하려 하지만 우리는그 야망을 버리려 해요. \" 야망을 버려 세상의 욕망에 들뜨지도 않고 기죽지도 않는 것, 그것이 \'사자의 서\' 가 메시지로 읽히는 은둔의 땅의힘인지도 모르겠다. 그 은둔의 땅에서 드러난 자, 달라이 라마. 바다도 다 담지 못할 지혜 를 가진 큰 스승이라는 뜻이다. 그렇게 큰 이름을 무심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큰 사람의 어깨에는 얼마나 많은 짐이 있는 것일까. 그 달라이 라마가 우리 한민족을 만나고자 한다. 나도 그 큰 스승을 만나고 싶다. 세계적인 지도자를 보고싶은 게 아니라 영혼이 모든 것의 근원자리임을 믿는 이의 기운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지식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또 하나의 지식을 구하겠는가. 책으로 읽으면 되는 그의 지식을 더 알고 싶은 게 아니라 그의 눈빛, 그의 몸짓에서 향기를 느끼고 싶다. 말의 내용보다 분위기가 더욱 중요한 세계가 있으니까. 그런데 올해 11월, 달라이 라마를 이 땅에서 만날수 있을까. 외교통상부가 중국과의 외교일정을 들어 11월로 예정돼 있는 달라이 라마의 방한을 허용하기 어렵다고 하고 있단다. 외교부는 왜 태도를 바꿨을까. 중국이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다웨이(武大偉)주한 중국대사의 말에 뼈가 있다. \"달라이 라마가 한국에 온다고 양국이 단교까지야 가지 않겠지만...\". 단교까지는 가지 않겠지만 그만큼 큰 영향을 끼칠 거라는 협박성 발언이다. 달라이 라마가 미국이나 일본에 갈 때도 중국의 허락이 있었는가. 다른 국가나 의회가 공식 초청해도 존중해 온 중국이 순수 민간 차원에서 추진 중인 달라이 라마의 한국 방문에 대해서는 왜 강경한가. 아직도 중국은 우리를 명나라 때 조공을 바쳤던 조선으로 길들이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또 우리 외교는 왜 그렇게 무기력한가. 왜 그렇게 곳곳에서 무력한가. 현실적인 피해자가 생존해 있고 미국에서 작전 명령서까지 발견됐는데도 \"노근리에 대해 증거가 없다\" 고 어떻게든 일을 덮으려고만 하는 이가 우리 대사다. 우리 역사와 관련된 일본 교과서 왜곡문제가 심각한데도 간단한 브리핑만 있을 뿐 공식적인 입장과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곳이 우리 외교부다. 곳곳에서 드러나는 국적불명의 눈치외교는 그것이 풍토이고 전통인 것같아 아찔하기만 하다. 그 외교력으로 일본을 향해, 너희나라의 철도 침목 하나 하나가 조선인의 시체라고, 일제 36년을 제대로 청산해야 수교할 수 있을 거라고, 당당하게 요구하는 북한과 함께 통일시대를 여는 믿음직한 주체가 될 수 있을까. 국회 연구단체인 \'나라와 문화를 생각하는 모임\' 에서, 달라이 라마방한준비위원회에서, 중국정부는 우리의 문화주권을 부당하게 침해하는일이 없어야 한다고 선언했지만 그 민족적 선언을 외교부가 어떻게 소화해 갈 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