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달라이라마와 \'국익\' 2000.10.30
관리자
출처 : 경향신문
지난달 19일 종파를 초월한 국내 종교계 지도자와 시민단체 대표로 구성된 달라이라마 방한준비위원회의 발족식에서 기독교계 원로인 강원룡 목사는 “중국 때문에 연기하라니 중국이 조선시대 명나라라도 됩니까. 우리 종주국입니까”라고 소리쳤다. 그 며칠전 우다웨이 주한 중국대사가 ‘방한’을 반대하는 위압·강경발언을 하면서 우리 외교부의 태도가 갑자기 굳어졌지만 준비위측은 설마하고 행사를 준비했다.
더군다나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받자 ‘89년 평화상 수상자’인 달라이라마의 11월 방한은 기정사실이 되는 듯했다. 김대통령은 평화상 수상발표 뒤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그의 방한문제에 대해 “정부에서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끝내 외교부는 방한을 불허하는 쪽으로 최종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안타깝고 답답한 소식이다.
아일랜드 평화운동의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머레드 맥과이어가 김대통령에게 서신을 보내는 등 역대 노벨 평화상 수상자 3명을 비롯, 세계인권기구 등 단체와 저명인사들이 ‘방한 허용’을 요구해 왔다. 미국 영화배우 리처드 기어는 김대통령에게 보낸 e메일에서 “불교전통이 깊은 한국이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달라이라마를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소식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했다. 국내에서는 100여 사회·종교단체가 방한 허용을 촉구하는 서명작업에 들어가 이미 12만명 이상 참여했다. 어제는 서울시내에서 대규모 시위도 벌였다.
준비위측은 외교부가 지난 5월 ‘적극 검토’로 태도를 바꾸고 장관이 6월 국회 답변을 통해 아시아·유럽정상회의 이후에 허용하겠다고 해서 믿었다고 분노한다. 외교부는 이번에도‘보류’일 뿐 거부가 아니라고 하지만 ‘기약없는 보류’가 거부보다 더 화를 돋울 수 있다. 외교는 실리와 명분을 저울질해야 할 때가 많다. 명분에 매달려 국익을 해쳐선 안되지만 뚜렷한 실익없이 명분을 잃다간 줏대없다는 비난을 받는다. 달라이라마가 다녀간 50여개 다른 나라들이 무엇을 잃었는지, ‘방한’을 막은 뒤 우리 정부가 얻을 이익이 무엇인지 참으로 궁금하다.
- 첨부파일:
-
- 조회수:
- 4770
- 등록일시:
- 2004-07-06 오전 10:37:5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