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있어도 이 세상에 있지 않는”
관리자
사진설명-순례자의 마을 다루첸에서, 왼쪽이 나정윤님
생전 처음인 먼 이국의 타자(他者)들, 곧 자연,문화,생활,인물 등, 여러 타자들은 내 스스로 몰랐던 자아를 타지에서 만나게 하며 이국의 사물과 렌즈 사이에서 교감되듯 여기 이 사진들을 탄생시켰다.
카일라스 성산을 찾아가는 길목에 신보다 더 거룩한 삶들이 지독한 인간 냄새를 풍기면서 “이 세상에 있으면서 이 세상에 있지 않는 듯한” 모양새로 나의 사진기를 미리부터 기다리고나 있었던 듯이, “아, 당신이었구려!” 하며 인간적인 것의 오지와 자연다움의 오지를 혼합시켜 새로운 경이의 감탄으로 내게 포착되었다.
찾아나선 순례자의 눈과 기다리고 견딘 구도자의 눈의 만남처럼 이것은 기막힌 눈맞춤, 이를테면 나의 렌즈가 비로소 개안(開眼)을 한 것이다.
- 나정윤 두 번째 전시회 작품집 가운데서
순례자
지옥에서도 살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
천국과 지옥을 같이 알고
생(生)과 사(死)를 마주보듯
태초(太初)의 부처님 삶을 등에 지고
보이지 않는 존재를 향한
순례의 길
저 세상으로 가서의 안락함도
이 세상에 사는 현세의 편안함도 아닌
오직 신을 향한 순례는
일상의 휴식, 빈 삶의 축제인가
카일라스 성산(聖山)으로 가는 고달픈 코라(Kora)
지네 같은 부복(俯伏)의 되풀이로
닳고 닳는 육신의 쓰라림
신앙도 고난이요
믿음도 아픔으로 오는
천년 넘는 순례의 길은
풍요에 묻힌 우리의 부끄러움
걸친 옷이 더럽다고
삶조차 남루하랴
새까만 땟국의 살갗들이
나를 보고 하얗게 웃고 있다
다루초(기도 깃발)
침묵하는 색조(色調)
다루초는 신에게 바치는 오색의 음절(音節)
오천 미터 넘는 고개마루마다
부처님 친견을 믿으며
깃털처럼 솟아오르는 기도 깃발이여
극락의 빛인 양, 현란한 남루(襤褸)
성스러운 만트라와 한몸이 된다
조장(鳥葬)으로 떠나간 육신들은
까마귀 날개 빌려 검은 넋이 되어
하늘과 구름과 바람과 다루초 타고
머얼리 머얼리
산정(山精)이여 응답하소서
하늘이여 보살펴 주소서
구름도 살피소서
다루초는
영원의 넋
영원한 영혼
펄럭이며
휘날리며 자연 만다라,
티베트의 신화로 남으리라
글-사진 나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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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시:
- 2004-05-12 오후 5:27: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