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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황제 스승이었던 달라이 라마… 독립운동 나선 이유는?

하얀연꽃

 

 

[숨어 있는 세계사] 中 황제 스승이었던 달라이 라마… 독립운동 나선 이유는?

 

티베트
 

달라이 라마 14세
달라이 라마 14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9일 '티베트 상호여행법'에 서명했어요. 중국은 그동안 외국 관리와 언론인이 티베트에 방문하는 것을 막아왔어요.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법은 '미국 기자·외교관·관광객이 티베트를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게 해달라'고 중국에 촉구하는 내용이에요. 중국은 당장 내정간섭이라며 반발했어요. 티베트가 어떤 나라길래, 달라이 라마가 어떤 분이길래 이런 큰 갈등이 벌어지는 걸까요?

◇제국을 위협한 토번

중국은 1950년 티베트를 침공해 점령하고 자국의 자치구로 삼았어요. 그로부터 9년 뒤 티베트에 독립운동이 일어났고, 티베트 불교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 14세가 인도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이어가고 있지요.

하지만 두 나라의 인연이 시작된 건 그보다 1000년 넘게 거슬러 올라갑니다. 과거 티베트고원에는 토번(吐蕃)이라는 왕국이 있었어요. 서기 8세기 세계 제국으로 발돋움한 당나라를 위협하는 군사 강국이었죠. 763년 토번군은 당나라의 수도 장안을 점령해 보름간 약탈하고 철수했어요.

하지만 이후 토번도 당나라와의 전쟁이 부담스러워졌어요. 서쪽의 이슬람 세력과 싸워야 했거든요. 결국 두 나라는 9세기에 '당번회맹비'(唐蕃會盟碑)라는 비석을 만들었어요. '토번인은 토번의 땅에서, 한족은 한족의 땅에서 평안히 살지어다'라는 글귀를 새겨 토번의 수도인 라싸, 당의 수도인 장안, 토번과 당의 국경에 하나씩 세웠지요. 이후 티베트는 인도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여 티베트 불교를 키워나갔어요.

◇몽골의 정신적 지주가 된 티베트 불교

시간이 흘러 토번도, 당도 멸망했어요. 13세기 중국 대륙에 몽골제국이 일어났어요. 티베트는 몽골의 강성함을 알고 오래 버티지 않고 항복했어요. 몽골은 티베트를 짓밟거나 군대를 주둔시키는 대신 티베트 불교 지도자에게 예를 갖췄어요. 몽골이 세운 원나라의 초대 황제가 된 쿠빌라이는 1260년 티베트 종교 지도자 팍빠에게 몽골 영토의 모든 불교를 다스릴 권력과 티베트를 다스릴 권력을 줬어요. 이후로 티베트 불교의 최고 지도자는 몽골 황제를 보필하면서 동시에 티베트를 다스리게 됐어요.

쿠빌라이가 이런 선택을 한 것은 몽골이 수많은 민족을 다스리고 아울러야 했기 때문이었어요. 몽골은 유목민족들 사이엔 티베트 불교가 멀리 퍼져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티베트 불교를 보호하고 후원하는 역할을 자처했어요.
티베트 라싸에 있는 포탈라궁은 티베트 불교 총본산이에요. 한때 중국 황제들의 ‘스승’ 대접을 받은 티베트 불교 지도자의 권위가 느껴지죠.
티베트 라싸에 있는 포탈라궁은 티베트 불교 총본산이에요. 한때 중국 황제들의 ‘스승’ 대접을 받은 티베트 불교 지도자의 권위가 느껴지죠. /게티이미지뱅크
 

이 관계를 티베트 말로 '최왼(chöyön·檀越)' 관계라고 불러요. 동아시아를 제패한 몽골 지도자는 '종교의 보호자' 역할을, 티베트 불교의 지도자는 '제국과 칸을 위해 기도하는 승려' 역할을 하며 서로를 존중한다는 뜻이에요.

이런 관계는 청나라로도 이어져요. 17세기 청나라 순치제는 당시 티베트 불교 지도자였던 5대 달라이 라마를 베이징 자금성으로 초대해요. 이후 청의 황제는 달라이 라마를 '황제의 스승(國師)'으로 대했어요.

◇당번회맹비와 함께 화평도 끝나

여기서 잠깐 달라이 라마에 대해 알아볼까요? 달라이 라마는 '큰 바다처럼 깊은 지혜를 가진 스승'이란 뜻이에요. 달라이 라마는 중생을 구하기 위해 몇 번이고 죽었다가 다시 환생한다고 해요. 지금 달라이 라마는 13번째 환생이라고 합니다.

1912년 청이 멸망한 뒤 중국 민족주의자 쑨원(孫文)이 신해혁명을 통해 중화민국을 세웠어요. 인도를 지배하던 영국과 새로 생긴 중화민국은 서로의 국경에 있는 티베트에 주목했어요. 티베트·영국·중화민국 3국 대표가 '티베트 중부·남부·서부에서는 달라이 라마가 종교적·세속적 통치권을 모두 갖고, 티베트 북부·동부에선 중국이 세속적 통치권을, 달라이 라마가 종교적 권한을 갖는다'고 합의했어요.

이 조약은 한 세대 만에 무너졌어요. 1949년 중국 국민당이 긴 내전 끝에 중국 공산당에 대륙을 내주고 대만으로 쫓겨갔어요. '중화인민공화국', 즉 지금의 중국이 대륙의 주인이 됐죠. 중국은 이듬해 티베트를 점령했어요. 공교롭게도 중국과 티베트 국경에 있던 당번회맹비가 지진으로 파괴된 직후였어요.

티베트는 이 문제를 국제사회에 호소했지만, 세계의 관심은 그해 한국에서 터진 6·25전쟁에 쏠려 있었어요. 결국 14대 달라이 라마가 중국 정부와 '17조 협약'을 맺습니다. 중국이 티베트의 군사권과 외교권을 가져가는 대신 티베트 자치를 인정해주는 내용이었죠.

그러나 이후 중국은 불교 승려를 탄압하는 등 티베트의 자치권을 충분히 보장하지 않았어요. 티베트인은 1959년 3월 10일 대규모 독립운동을 벌입니다. 이 과정에서 14대 달라이 라마는 인도로 망명해 망명 정부를 세웠어요. 달라이 라마는 비폭력 독립운동을 이끈 공로로 1989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어요. 중국은 그때도 격분했어요.

 

안영우·명덕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양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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