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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험한 티베트 독립운동(1959년 달라이라마 인도 망명)

관음손
[어제의 오늘]1959년 달라이라마 인도 망명
 

 

 

 

ㆍ멀고도 험한 ‘티베트 독립운동’

‘달라이 라마’는 몽골어와 티베트어가 합성된 말이다. ‘큰 바다와 같은 영적 지도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라마 불교에서 달라이 라마는 부처의 환생이라고 믿는 존재다. 정신적 지주임은 물론 정치적 권위까지 갖춘 법왕을 의미한다. 하지만 1940년 티베트의 14대 달라이 라마에 즉위한 텐진 갸초는 비운의 법왕인 동시에 민족의 미래를 홀로 책임진 외롭고 고독한 존재다.

1949년 수립된 중화인민공화국은 이듬해 인민해방군을 동원해 티베트를 강제 점령했다. 이른바 ‘17조 평화조약’을 통해 티베트를 중국 영토로 편입시키고 종교·민족·문화에 대한 말살 정책을 실시했다. 티베트인들의 저항은 10만명에 가까운 희생자를 내는 것으로 끝났다.

1959년 2월 중국은 달라이 라마를 한 연극에 초대했다. 아무 호위 없이 혼자 중국군 사령부로 오라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티베트인들은 달라이 라마가 살해될 것으로 직감했다. 군중 수만명이 달라이 라마가 거처하던 수도 라싸의 별궁을 에워싸고 그를 보호했다. 유혈사태가 벌어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달라이 라마는 탈출을 결심했다.

티베트 군복을 입고 병사로 위장한 달라이 라마는 수명의 호위를 받으며 야밤에 별궁을 빠져나와 인도로 향했다. 2600㎞의 고단한 역정 끝에 일행은 3월31일 히말라야 산맥의 고지대 다람살라에 도착해 망명정부를 꾸렸다. 그의 뒤를 따라 약 10만명의 티베트인들이 다람살라로 왔다. 그들에게 ‘큰 바다와 같은 영적 지도자’가 없는 라싸는 아무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람살라 망명정부는 티베트 독립운동의 근거지가 됐고 국제사회는 달라이 라마를 적극 지지했다. 그는 1989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120만 티베트인들이 희생한 대가였다.

아직도 상황은 티베트인들에게 불리하다. 세계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 앞에서 국제사회의 항의는 무력하다. 중국의 압력으로 달라이 라마의 입국을 불허하는 나라도 늘어가고 있다.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의 외교·군사적 독립 요구를 접고 자치권 확대를 추구하는 ‘중도 노선’을 취하고 있지만 중국의 태도는 완강하다. 이 때문에 티베트에서는 강경 투쟁 노선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이들이 중도를 취하든, 투쟁을 선택하든 여전히 중국이 결정권을 갖고 있는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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