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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서재] <달라이 라마가 들려주는 티베트 이야기>

화이트타라

"티베트, 낯선 진실과 마주하다"

 

[철학자의 서재] <달라이 라마가 들려주는 티베트 이야기>

 

기사입력 2009-04-18

 

 

 

▲ <달라이 라마가 들려주는 티베트 이야기>(토머스 레이드 지음, 황정연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프레시안

티베트에 관한 단상

나는 아직 가보지 못한 낯선 땅들에 호기심이 많은 편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러한 호기심 끝에 '그곳은 꼭 가보고야 말테야' 하는 결심은 별로 하지 않는다. 처음 티베트에 대해 가졌던 호기심은 사람들의 일반적인 관심을 넘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런데도 그곳은 한번쯤은 가봐야 할 곳처럼 생각되었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현대 문명으로부터의 오랜 격리, 그로부터 덧칠된 신비로움에 대한 동경이었을까?

베이징에는 자금성과 똑같은 황금색 지붕의 옹화궁(雍和宮)이라는 티베트 불교사원이 있다. 황제가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이 사원에는 티베트 불교를 소개하는 작은 기념관이 있다. 나는 그곳에서 달라이 라마가 아닌 '판첸 라마'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티베트'가 중국 내에서는 물론 중국 외부에서도 인터넷으로 검색되지 않는 '금지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2008년 여름, 서울의 거리에서는 베이징 올림픽 성화가 봉송되고 있었고 그 한편에서는 중국 정부의 티베트 시위 탄압에 대한 항의가 있었다. 이를 본 몇몇의 중국인들은 이와 같은 행위에 대한 불편한 심경을 폭력적으로 내보였다. 그리고 한국의 거리에서, 한국민에게 보여준 그들의 행동에 우리 또한 편안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말처럼 그곳에서는 티베트와 중국, 그리고 우리의 민족주의가 충돌하고 있었다.

<달라이 라마가 들려주는 티베트 이야기>(토머스 레이드 지음, 황정연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는 이렇듯 단상들의 조합이었던 티베트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역사책이지만 차가운 제3자의 시각만은 아니며, 달라이 라마의 말에 의존하지만 객관적인 거리감은 거두지 않았다. 두툼한 책의 두께가 주는 시각적 공포감만 극복할 수 있다면 티베트의 과거와 오늘뿐만 아니라 그들의 미래에 대한 고민까지도 깊이 들여다 볼 수 있다. 티베트에 가보고 싶다던 마음을 아직까지 실행에 옮기지 못하며 주저하고 있었던 것이 참 다행이다. 자, 이제는 티베트에 가도 될 것 같다.

포탈라궁은 건축물일 뿐이다

티베트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티베트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예외 없이 첫 대답은 '달라이 라마'이고, 그 다음 대답은 티베트 수도 라싸의 거대한 건축물인 '포탈라궁'일 것이다. 이 둘은 실제로도 티베트의 상징이다. 현재의 달라이 라마인 텐진갸쵸(Tenzin Gyatzo)는 14대 달라이 라마이다. 티베트 불교는 티베트 사람들이 툴쿠(Tulku)라고 부르는 중심적 존재가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죽어서 열반에 오를 수 있는데도 다른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기를 선택하는 불교의 스승들이 툴쿠인데, 달라이 라마는 세상에 가장 널리 알려진 툴쿠이다. 티베트 불교는 이들의 환생을 제도화하였고, 티베트 사람들은 달라이 라마가 관세음보살화신임을 굳게 믿으며 이에 의탁하여 자신들의 현세와 내세의 평안을 구했다.

라싸에 들어 올 때 가장 먼저 보이고 멀어지면서도 가장 나중에까지 보인다는 포탈라궁 역시 달라이 라마의 상징이자 티베트의 표상이다. 심지어 포탈라궁은 티베트가 돌아가는 중심축과 같다고 한다. 티베트에서 사원은 가르침을 보존하는 수단으로 가족이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유전자를 물려주듯,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가르침을 물려주는 곳이다. 물론 그로인해 맹신과 집착이라는 함정에 빠질 치명적인 위험을 가지고 있지만, 사원과 그것들의 대표성을 가진 포탈라궁은 지금도 티베트인들의 신앙의 상징이며, 정신적 버팀목이다.

여전히 환생(還生)과 활불(活佛)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으며 자신들의 오래된 문화와 상징을 고수하는 티베트는 우리에게 낯설다. 그 낯설음은 신비로운 것이라고 포장되어졌고, 우리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이건 과학적이지 않아. 그래서 믿을 수 없어." 실제로 종교적 믿음과 과학적 사실은 종종 배타적으로 충돌한다. 그러면서 그 중 하나만 선택할 것을 요구한다. 달라이 라마는 "과학적인 결론이 불교 신앙과 상충한다면, 그 결론이 충분히 증명된 이상 우리는 예전의 믿음을 버려야 한다", "기존의 믿음이 아닌 과학적인 사실을 믿어야 한다. 붓다 역시 우리 모두 경전에만 의존하지 않고 관찰과 실험을 통해 마지막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고 말한다. 그의 이와 같은 생각의 끝에는 티베트인들의 달라이 라마 환생에 대한 맹목적 믿음이, 포탈라궁으로 대표되는 사원과 종교에 대한 지나친 애착과 의존이 티베트의 미래에 장애가 될 수도 있다고 판단이 함께 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역사관에도 다른 모든 것을 대할 때와 마찬가지로 일반적인 관점과 일반적이지 않은 관점이 있다. 서로 다른 관점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포탈라도, 티베트도 이해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받아들이기 쉽지는 않겠지만 인식에 있어서 일반적인 관점과 영적인 수련을 통해서 정화된 통찰력을 갖게 된 사람들이 갖게 되는 일반적이지 않은 관점을 모두 사실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히 불교적 신앙을 토대로 이루어진 티베트와 티베트의 역사는 이 두 관점이 모두 진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고, 티베트의 문제 역시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올바로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나의 관점은 결국 하나의 결론만을 이끌어낼 수밖에 없고, 그러한 결론은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 없다. 중국에 의해 강제 점령된 티베트, 이 문제를 이렇게 저렇게 정치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이방인들의 가벼운 훈수에 대한 뼈있는 일침이다.

티베트와 중국, 오래도록 풀리지 않은 매듭

1950년 중국의 인민해방군이 티베트에 침공하고, 1951년 무력으로 점령한 후 티베트는 중국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이후 1959년과 1987년에 독립의 위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1959년 3월 민중봉기 때는 수만 명의 티베트인이 중국의 무력진압에 희생된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 정부는 이를 티베트 농노를 해방시키기 위한 일이었다고 미화하며, 3월 10일을 '티베트 농노 해방일'로 기념하고 있다. 2008년 3월 티베트 라싸에서 시작되어 중국의 티베트인 거주 지역까지 확산되었던, 올 봄에도 지속되었던 시위는 바로 이와 같은 중국의 오랜 티베트 무단 점령과 폭력적 지배에 대한 티베트인들의 저항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 한 동안 가라앉아 있던 티베트 문제에 대한 관심이 다시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는 것 같다.

티베트와 중국은 여러 세기에 걸쳐 관계를 맺어왔다. 당(唐) 시기에는 중국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었던 적도 있으며, 원(몽골)과는 종교적으로 밀접했고, 청(만주)과는 종교적 관계와 더불어 조공 관계에 있었다. 중국 정부는 티베트가 역사적으로 중국 영토의 일부였다고 주장하며 멀리는 원나라 때를 가깝게는 청나라 때의 티베트와 중국의 관계를 근거로 제시한다. 그러나 중국이 과거 오랫동안 주변국들과 조공 관계를 유지해왔음을, 이를 근거로 지금 그 당사국들의 영토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음을 분명히 안다면, 티베트가 역사적으로 중국 영토의 일부였으며 이 때문에 지금의 점유가 정당하다는 중국 정부의 주장이 매우 약한 근거, 또는 억지 근거 위에 세워져 있음을 간파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주장이 20세기 이후 형성된 중국 민족주의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점도 어렵지 않게 눈치 챌 수 있다.

그러나 달라이 라마는 과거의 역사와 현재의 상황을 이야기하는 속에서 여러 번 이러한 문제를 만든 원인이 단순히 외부에만 있지 않음을 내비친다. "외부 요인을 먼저 찾으려는 경향은 인간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박힌 것으로 이것을 없애기란 어려운 일이다", 심지어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중생의 집합적인 힘, 그 힘이 우주 전체를 형성한다. 그런 요인들 중 하나가 티베트 사람들의 업(業)인 것이고, 그것 역시 한 요인이다"라고 말한다. 기자출신 미국인인 토머스 레이드는 달라이 라마의 이와 같은 말을 듣고 '정치적 동기는 끝없이 얽혀 있는 인간사의 그물에서 한 가닥 실 이상이 아니다'라는 생각에 이르렀다고 고백한다. 필자는 저자의 이와 같은 '고백'이 쉽지 않았으리라 여겨진다. 티베트와 티베트인들이 무고하게 오랫동안 중국의 지배 아래서 고통 받고 있는데, 그 원인이 티베트 내부, 더 나아가 티베트 사람의 업에도 있다는 달라이 라마의 담담한 지적을 누구도 쉽게 받아드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문제가 발생했다면, 그 문제를 어떠한 방향과 방법으로 해결할 것인가는 문제의 원인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가 달라이 라마의 생각에 동의하든 동의할 수 없든 달라이 라마의 티베트 문제에 대한 접근과 해결 방식은 이와 같은 그의 인식에 기반하고 있다.

자유를 향한 긴 여정, 그리고 달라이 라마

14대 달라이 라마는 1959년 중국에 점령된 티베트에서 탈출하여 중국과의 17개조 협정의 무효를 선포하고 인도에 티베트 망명정부를 세웠다. 1987년 6월 미국 의회는 처음으로 티베트 인권문제를 제기한 뒤 같은 해 9월 달라이 라마를 초청했다. 당시 미국 의회와 달라이 라마는 한목소리로 티베트에 주둔한 중국 군대의 철수와 한족 이민정책의 중지를 요구한다. 그러나 1988년 6월 유럽의회에서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가 오랜 역사적 지위인 독립을 원하지만 티베트의 진정한 자치에 대해 중국과 협상할 뜻이 있음을 처음 밝혔다. 그 이후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 문제의 해결로 '독립'이 아닌 '높은 수준의 자치'를 주장한다. 이것은 중국이 티베트의 행정권만 인정하면 티베트는 독립국가로서의 외교권과 국방권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1989년 12월 달라이 라마는 69회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면서 '비폭력' 사상을 밝힌다.

"우리 민족이 지난 40년 동안 강점으로 받은 고통은 여실히 증명되었다. 우리는 우리의 명목이 정당함을 안다. 폭력은 더 많은 폭력과 고통만을 불러올 뿐이므로, 우리의 노력은 증오심 없이 비폭력적으로 지속되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 민족의 고통을 끝내려는 노력을 하고 있을 뿐, 타인에게 고통을 주려는 의도는 없다."

"1950년 이후 모든 사람들이 달라이 라마를 티베트의 구원자이자 수호자로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책임을 짊어진 것이다." 달라이 라마가 이야기하듯 티베트인에게 그는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절대적인 추앙과 지지를 받는다. 만약 그가 티베트의 정치 지도자의 역할만 했다면 티베트 문제의 해결 방향과 방법이 지금과는 달랐을지 모른다. 독립이 아닌 '높은 수준의 자치'는 중국으로부터 분리 독립하기 어려워지는 정치 상황에 의거한 현실적 고려라 할지라도,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는 상대에게 비폭력으로 저항하겠다는 의지를 공표하는 것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종교 지도자이며, 살아 있는 부처이고, 스스로도 한 사람의 불교 승려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음에 생각이 미치면 그것이 마땅한 선택일 수 있겠구나하고 이해되어진다. 또한 이것이 일반적인 관점과 일반적이지 않은 관점 모두로 티베트를 봐야 하며, 티베트의 문제는 티베트인의 업, 내부 원인, 그리고 외부 원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그의 생각들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의 비폭력 사상은 자신의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다른 이에게, 나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상대일지라도 그에게 고통이 될 인연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인가? 그리고 나로부터 시작되었을 문제의 원인을 먼저 돌아보라는 것인가?

"물론 총에도 나름대로 힘이 있다. 그러나 총의 힘은 단기적이고 일시적이다. 단기적으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지만 결국에는 약한 것이 총이다. 진실의 힘이 고개를 든다. 진실이 변하는 법은 없다."

낯선 진실과 마주하다

최근 티베트 문제가 다시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권리를 침해 받는 사람, 민족, 국가는 마땅히 그 정당한 권리를 되찾아야 한다는 원칙으로부터 티베트는 완전한 독립을 이루어야 하고, 우리는 그것을 지지해야 한다는 일방적인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결론을 내리는지와 상관없이, 티베트 망명 정부의 공식 입장은 달라이 라마와 동일하다. 지난해 11월 사상 처음 티베트 망명 정부의 긴급 회의가 소집돼 평화 노선의 유효성을 집중 토의하고 표결에 부쳐, 찬성 70%로 이를 견지하기로 했다고 한다. 30%의 반대는 아마도 우리의 결론과 유사할지 모른다. 그리고 달라이 라마의 평화 노선이 흔들린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티베트 문제에 있어서 우리가 마주해야 할 진실은 무엇일까? 거기에 하나의 진실만이 있는지, 아니면 여러 개의 진실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진실이 반드시 하나인 것만은 아닐 수도 있으니까) <달라이 라마가 들려주는 티베트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조금은 낯선 진실과 마주했다.

책을 덮고 글을 정리하며 내 머리 속에 떠오른 것은 낯설지만 흥미롭고 진지한 이야기를 들려주던 달라이 라마도, 저 서쪽 끝 고원에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을 티베트 사람들도 아니었다. 바로 지금도 오체투지를 하면서 우리 사회의 고통을 함께 나누어지고 있는 우리의 종교인들이었다. "우리의 기도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나를 바로 세울 수 있기를 간절히 발원할 따름입니다. 희망. 당신을 향한 우리의 기도는 계속됩니다."(오체투지 순례단 발원문) 나는 우리 사회에서도 낯선 진실과 마주하고 있었다.

 

 

/박영미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한양대 강사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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