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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일기 -정중규

티벳일기
 2006-07-12  
 
 티벳일기 1: 중띠엔에서 차마고도를 따라 티벳으로

 


 

후지와라 신야는 <티베트 방랑>(한양출판, 1994)에서 타임 슬립(시간의 흐름을 바꿔 미래나 과거로 건너뛰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타임 슬립이란 동시대에 존재하는 전혀 다른 지층연대를 말한다. 가령 티벳을 여행하다보면 느끼게 되겠지만, 그곳에는 아직도 한국의 1960년대가 곳곳에 존재하고, 우리가 현대화 과정에서 잃어버린 시골의 가치와 정서가 엄연히 실재한다. 그러므로 티벳을 여행한다는 것은 순진한 과거로의 시간여행에 다름아니다.

아침 8시. 쿤밍공항을 떠난 비행기는 구름 속을 헤치고 중띠엔으로 날아간다. 기내방송에서는 계속해서 샹그리라, 샹그리라, 샹그리라가 흘러나온다. 중국에서는 이제 옛 티벳의 땅인 중띠엔을 샹그리라(香格里拉)로 부르고 있다. 1933년 영국의 제임스 힐튼(Hilton James, 1900~1954)이 쓴 장편 <잃어버린 지평선 Lost Horizon>에 보면 히말라야 남쪽 티벳의 산중에 영원히 평화롭고 고요한 신비의 땅이 있다고 했다. 작가는 소설의 주인공(콘웨이)이 찾아간 이 산중의 사원을 '샹그릴라'로 이름붙였다. 이 소설이 널리 알려지면서 샹그릴라는 ‘마음의 이상향’으로 불리게 되었고, 중국은 이 소설의 지명을 빌려 중띠엔 인근을 샹그리라로 명명했다.

 

  거대한 꾸이산 마니차.

 

구불구불 사행천이 휘돌아나가는 녹색 습지와 그 너머로 보이는 뭉툭하고 완만한 산마루. 노란 유채와 푸른 밀밭이 펼쳐진 들판. 계곡의 자욱한 안개 속으로 드러난 빛 바랜 촌락의 집들. 그 풍경 속으로 실랑실랑 가랑비가 흩뿌렸다. 비가 오는 샹그리라 공항. 드디어 나는 티벳 여행의 기점인 중띠엔에 도착했고, 중국이 강제로 점령한 옛 티벳 땅에 첫발을 내딛었다. 평균 해발 3300미터의 고원도시. 과거 티베탄 마을이었던 이 곳은 이제 대부분 한족이 상권을 장악한데다 티베탄을 몰아내고 도시의 노른자위마저 모두 차지한 상태다. 이는 이미 중국이 티벳을 강제점령했을 때 예견된 일이었다.

시내 허름한 식당에서 떠우지안(콩국물)으로 속을 달래고, 씨판(쌀죽)과 바오쯔(만두)로 배를 채운 뒤 본격적인 중띠엔 구경에 나선다. 복원이 한창인 너와집촌을 지나면 야트막한 언덕에 꾸이싼(구산사) 사원이 자리해 있다. 사원은 볼품없고, 대신 언덕에 자리한 거대한 마니차(안에 경전을 넣어 돌리는 금속으로 된 경전통)가 유명한 곳이다. 거대한 마니차는 혼자서는 돌릴 수 없을 정도로 육중해서 대여섯 명은 힘을 보태야 겨우 돌아간다. 꾸이싼 언덕에서 바라본 중띠엔은 여전히 자욱한 안개로 뒤덮여 있다. 시내를 벗어나면 티벳 사원(곰파)으로는 윈난에서 가장 크다는 쑹첸린 사원을 만날 수 있다. 쑹첸린은 간덴사원을 세운 쫑카파(1357~1419)의 법통을 따르는 겔룩파(티벳 불교의 가장 강력한 종파) 사원으로 '중띠엔의 포탈라'로 통한다. 

 

작은 포탈라라 불리는 쑹첸린 사원의 황금지붕.

 

사실 티벳에서는 사원과 마을이 분리돼 있지 않았다. 사원이 생기면 그 곳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었다. 사원이 마을이고, 마을이 곧 사원인 것이다. 쑹첸린도 다르지 않았다. 어디선가 곱향나무(소나무처럼 생긴 향나무)를 피우고 있는지 사원으로 가는 길은 온통 향 냄새가 진동한다. 자욱한 연기와 안개. 분명하지 않은 시야 속에서 쑹첸린은 점점 분명한 모습을 드러내며 내 눈을 자극한다. 여러 채의 크고 작은 사원과 수많은 부속채로 이뤄진 쑹첸린은 달라이 라마 5세 때인 1679년에 처음 지어졌다고 하지만, 80년대 이후 복원된 곳이 대부분이어서 그렇게 오래된 옛빛은 찾아볼 수가 없다.

더구나 지붕의 금칠은 최근에 해 놓았는지 너무 깔끔하고, 찬란해서 오히려 거부감이 든다. 그러나 사원을 둘러싼 라마의 집들과 사하촌 풍경은 오래된 흙벽과 회벽이 그대로이고, 지붕조차 잡풀이 성성한 흙지붕이어서 보는 맛이 은근하다. 시내에 인접한 꾸이싼보다 고도가 높아서 사원 지붕에 올라 바라보는 중띠엔 조망도 훨씬 장쾌하고 넉넉하다. 중국이 샹그리라로 부르는 핵심지역 중띠엔의 볼거리는 사실 이 정도에 불과하며, 진정한 샹그리라 풍경은 중띠엔을 벗어난 미지의 고원과 협곡에 존재한다.

 

 

중국에서 티벳으로 가는 육로는 칭장공로(청해-티벳), 신장공로(신장-티벳), 진장공로(윈난-티벳) 등 크게 세 곳이며, 네팔에서는 주로 국경을 넘어가는 우정공로를 통해 티벳으로 들어온다. 중띠엔에서 티벳을 잇는 진장공로의 노선은 중띠엔-더친-옌징-망캄-팍쇼-뽀미-링트리(빠이)-공푸장따-라싸로 이어지며 총연장 2000여 킬로미터에 달한다. 이 길은 중국의 옛 교역로인 차마고도의 옛길을 따라가는 사연 많은 길로써 지금도 티벳에서는 가장 은밀하고 험난한 길로 알려져 있다. 특히 중띠엔에서 망캄을 잇는 214번 국도는 아직도 대부분이 비포장인데다 수시로 산사태가 일어나 가장 어려운 험로로 통한다.

도로는 해발 3000과 4000의 경사를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내리며, 어떤 곳은 100킬로미터를 가도록 마을이 보이지 않고, 어떤 곳은 반나절 이상 5000미터급 산을 넘어야 한다. 사실 여행이라기보다는 탐험이 더 어울리는 길이 바로 214번 국도인 것이다. 중띠엔을 빠져나와 이제 나는 그 길로 들어선다. 차마고도(茶馬古道)를 따라가는 위험하고도 장엄한 길. 옛날(7~8세기) 윈난에서 생산된 차는 오랜 저장을 위해 발효시켜 덩어리로 만든 다음 대발쌈에 싸서 말과 노새에 싣고 리장과 중띠엔, 옌징과 창두, 뽀미, 링트리를 차례로 거쳐 라싸까지 거래되었는데, 주로 티벳과 윈난의 대상이었던 ‘마방’이 이 중계무역을 담당했다. 이렇게 티벳에 온 차는 다시 실핏줄처럼 뻗어 있는 차마고도의 샛길을 따라 네팔과 인도에까지 퍼져나갔다. 

 

쑹첸린 사원 지붕에서 내려다본 샹그리라 핵심지역인 중띠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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