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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공주와 송캉챙포

화이트타라
문성공주와 송캉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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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티베트자치구에 자리한 라싸시는 독특한 풍격을 소유한 고원 도시이며 명실상부한 불교 성지입니다. 라싸시에는 세계에 이름난 부다라궁이 있는가 하면 서역과 내지간 빈번한 교류를 진행하면서 남겨놓은 많은 고적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감동적인 것은 당나라때의 문성공주가 토번왕에게 시집을 가면서 남겨놓은 이야깁니다

 

기원 7세기로부터 10세기까지의 당나라는 중국역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왕조의 하나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당나라는 당시 국력이 아주 강했고 전반 동아시아 지역에도 크나큰 영향력을 과시했습니다. 당나라 건립초기 서남 부락왕 송캉챙포는 티베트고원을 통일하고 토번 왕조를 건립했습니다.

 

송캉챙포는 집권기간 제도적인 장치를 강화하였고 경제 발전에 주력했으며 문자창조, 불교인입, 불경번역 등 문화사업 발전도 적극 추진하였습니다. 그는 또한 토번왕조 내부 건설을 강화한 동시에 당나라와의 밀접한 관계를 건립하였고 당나라의 선진적인 생산기술은 물론 정치문화 분야에서의 경험을 적극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두번이나 당나라에 사절을 파견해 청혼하기도 하였습니다.

 

640년 당나라 황제 이세민은 송캉챙포의 청혼을 받아들이고 문성공주를 시집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문성공주는 토번으로 가는 길에 많은 아름다운 전설을 남겼는데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청해호 유래입니다. 티베트족들에게는 문성공주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잊도록 하기 위해 황제가 특별히 문성공주에게 어데를 가든 항상 당나라 경치를 비쳐 볼 수있는 보배거울과 황금으로 주조한 해와 달 모형을 선물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전설에는 문성공주가 당나라와 토번의 국경선상에 도착했을때 앞으로 자신의 인생길을 열심히 가기 위해 보검속에 비쳐진 고향의 경치를 다시 보고 보경과 해와 달 모형을 현지에 두고 갔는데 그 뒤 보경은 아름다운 청해호로 모습을 바꾸었고 황금으로 주조한 해와 달은 일월산이 되었다고 적혀있습니다.

 

문성공주가 토번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소식을 접한 송캉챙포는 기쁘기 그지없었습니다. 송캉챙포는 자신이 직접 군대를 거느리고 당나라와 토번의 국경인 황화의 발원지로 가서 문성공주를 맞이하였으며 또한 당나라 사위의 신분으로 당나라 후행 사절들을 맞이했습니다. 문성공주는 티베트에 도착하자 마자 현지인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습니다.

 

문성공주는 토번에 시집와 현지의 경제 발전을 촉진하였고 불교문화를 고양하였으며 당나라와 토번간의 관계를 밀접히 했습니다. 문성공주는 옥수(지금의 청해성)를 경과하면서 부황이 자신에게 준 곡물종자와 채소씨를 현지인들한테 내놓았음은 물론 공예사와 함께 종자심는 방법과 가루를 내고 술을 빚는 방법 등을 전수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또한 당나라의 수레, 말, 노새, 낙타 등을 토번에 갖고 갔는데 이는 현지의 사회진보를 크게 촉진하기도 하였습니다.

 

당나라때는 불교가 아주 성행했습니다. 경건한 불교신도인 문성공주는 불탑, 경서와 불상도 토번에 갖고 갔습니다. 송캉챙포는 사찰을 짓고 불교를 포교하겠다는 문성공주의 건의를 받아들이고 사람들을 동원해 도시 중심에 대소사를 지었습니다.

 

현재 대소사에 모셔진 석가모니 동상이 바로 문성공주가 당시 장안으로부터 갖고 간 것입니다. 문성공주는 또 사찰앞에 친히 한그루의 버드나무를 심었는데 그때 심은 버드나무는 지금까지 보존되면서 사람들로부터 "당류" 또는 "문성류"라고 불려지고 있습니다. 그는 또한 라싸시 주변에 있는 산들의 이름도 지어주었는데 그 이름들 역시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송캉챙포는 현숙하고 다재한 문성공주를 아주 좋아했습니다. 그는 문성공주를 위해 기세가 웅장한 부다라궁까지 건설해 주었습니다. 궁에는 지금도 문성공주와 송캉챙포의 신방 흔적과 많은 벽화들이 남아 있습니다. 벽화중에는 문성공주가 티베트로 찾아오는 동안 겪은 갖은 어려움과 라싸에 도착해 뜨거운 환영을 받는 장면이 망라돼 있습니다.

 

송캉챙포가 문성공주를 아내로 맞아들인 후 당나라와 토번의 관계는 매우 밀접해 졌고 사신과 상인들의 내왕 또한 아주 빈번했습니다. 송캉챙포는 당나라 복장에 큰 관심을 보이면서 원래의 모전이나 가죽옷을 비단으로 바꾸었는데 제자를 장안에 파견해 기술을 배워오게 하는 조치도 취했습니다. 당나라 또한 계속 여러 유형의 기술자를 토번에 파견해 기술을 전수하기도 했습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먼 토번에 시집간 문성공주는 당나라와 토번의 경제발전을 추진했음은 물론 티베트족과 한족간 관계까지 밀접히 했으므로 후세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710년 송캉챙포의 아들도 아버지를 본받아 역시 당나라에 청혼하였습니다. 당나라는 금성공주를 시집보내기로 허락하면서 회맹(會盟)비까지 세워주었습니다. 비석에는 한어와 티베트어 두가지 문자로 맹서(盟誓)를 조각하였는데 티베트족과 한족간에 세세대대 친선적으로 지낼 염원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또한 한족과 티베트족간 친선관계의 역사적인 견증이기도 합니다.

 

(송캉챙포 동상)


 

(당나라 문성공주 동상)


 

(드라마 '문성공주'의 한장면)


 

(드라마 '문성공주'의 한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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